인간관찰과 애니메이션 by 蘭忍


이글루스의 蘭忍님이 번역하신 내용을 옮겨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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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야오 [이런건말야, 실제로 어린애를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야.]

하야오 [그런 관찰 못하면 못그리지. 이걸 안하고 암것도 안보고, 자기 자아밖에는 관심이 없고, 그런 일상생활만 보내고있고]

리포터 [인간을 좋아하는지 어떤지에도 관련된건가요?]

하야오 [일본 애니메이션은 말이지,대부분 관찰을 기초로 하질 못하고있어. 인간관찰을 싫어하는 인간이 하고있는거야. 그러니까 오타쿠 소굴이 되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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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야기의 기반은 사람입니다.
또 이야기의 소비자도 사람이죠.

자기가 어떤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들지, 어떤 사람에게 이야기를 팔지를 잘 알기 위해서는 타인에 대한 이해와 관찰이 중요하죠... 무척 정곡을 찌른 말이라고 봅니다. 테크닉보다도 좀 더 중요한 것이 있는 것이죠.


http://navercast.naver.com/peoplehistory/wisdom/1931

 

실천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용기가 아닌 스테미너...

아마도 저 말의 의미는 체력이 아니라 '기력과 담력'을 합해서 스테미너라고 부르는 거 같다.

 

움직일 수 있는 한 움직여서 얻으란 말...

네이버 우리 시대의 멘토에는 종종 쓸만한 말들이 올라오는 거 같다.

아바타를 처음 봤을 때는 저 뭥미했는데, 두 번째 보면서 얼마나 그 영화가 품이 많이든 영화인지 납득했습니다. 이야기로나 비쥬얼적으로나 흠잡을 데가 없는 영화죠.

 

연극을 보던 고대 그리스 사람들이나 영화를 보는 현대인들이나 결국 이야기에서 기대하는 건, 이야기 자체에서는 완결성과 카타르시스, 그리고 스펙타클이란 점만은 변함이 없는 거 같습니다.

 

사람들은 이야기에서 사실성을 보려는 게 아니라, 개연성을 보려고 들죠. 시학에서도 나오는 말이지만, 난잡한 현실 그대로를 보여주기보다 아름다운 구조로 재조립된 이야기를 더 좋아하는 건 사람의 본능이기도 하고요.

 

아바타는 그 자체로 이야기의 완결성을 갖는다는 점에서 꽤 좋은 영화였습니다. 어줍지 않게 하이퍼 텍스트 지향이라니 어쩌니 하면서, 자기 작품 덕질하다가 망하는 이야기꾼들의 이야기를 보면 더더욱 그렇단 생각이 듭니다.

 

덧. 그런데 김수현 작가님 왜 그러셨어요 ( '') 김수현 작가님도 예술하고 계신 게 아니라, 통속극 쓰고 계시잖아요.

태그 : 아바타,영화

좀 지났지만, 맨 오브 라만차를 봤습니다.
그런데 이게 몇 번째 보는지 모르겠군요.

이상하게 이 공연은 매번 공연할 때마다 보는 거 같네요.
심지어 캐스팅도 류정한씨와 이혜경씨의 캐스팅이었습니다.

공연 시기가 달라져서인지 무희들의 의상이 달라진 거빼곤 주연들의 의상(?)도 거의 그대로 활용한 듯한 공연이었고요. 거의 비슷한 느낌이긴 했는데, 류정한씨의 돈키호테 연기는 좀 더 무르익었구나란 느낌이 들었습니다.

LG 아트센터의 무대는 깊이가 깊고, 폭이 좁은데요.
그 좁은 무대가 답답해 보이진 않더군요.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역시 음향은 국립극장보다는 LG 아트센터가 낫단 느낌이에요.

맨 오브 라만차는 볼 때마다 희망을 리프레쉬 받는 느낌입니다.
특히 현장에서 듣는 '이룰 수 없는 꿈'은 언제나 감동적이죠.

픽션이 그토록 감동적이고 픽션에서의 영웅들의 삶이 그토록 숭고해보일 수 있는 건, 그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일들을 하면서 반드시 보상을 받는 내용이기 때문인 듯합니다. 현실에서는 그러진 못하지만, 극에서는 자신이 말하고 싶은 의도에 따라서 영웅들에겐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보답을 주기 때문이죠.

근래에는 영화 더 로드도 봤습니다.
아바타의 핵폭탄급 인기 때문에 빨리 간판을 내린 탓인지, 극장에서는 보기 힘들더군요. 그래서 어둠의 루트(-_-; )를 통해서 볼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이 영화는 나쁘지 않은 캐스팅에 나쁘지 않은 이야기인데도 사실 마음에 들진 않는 이야기더군요.

보고 있으면 왜 이 영화가 아바타에 밀릴 수밖에 없었는지 알겠더군요.
아바타가 사람들이 보고 싶어하는 것을 보여주는 반면에 더 로드는 사람들이 보기 싫어하는 것과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합니다.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서 인간을 먹고, 자신의 물건을 빼앗아간 이에게 보복하기 위해서 병든 사람의 옷을 빼앗고... 그런 이야기들이 나오죠. 저런 이야기도 나쁘진 않아요.

하지만 문제는 저 영화의 배경이 그저 저런 이야기를 보여주기 위한 세팅만을 위한 것을 보인다는 겁니다. 재난의 실체가 뭔지 그것이 시작이 어땠는지 이야기를 하지 않고, 마치 '고도를 기다리며'처럼 추상적인 상황만을 제시합니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연극적인 상상력이 필요한 작품이었으니, 그랬다 치지만 굳이 영화란 것을 보여주면서 저런 식의 배경을 취했어야 할 이유를 모르겠더군요. (어디선가 굳이 영화로 만들 필요없었다란 평이 있다는 걸 좀 납득했습니다.)

소설은 좀 더 몰입하기 쉽고 세세한 사건을 다루고 있을지 몰라도, 영화 자체만으로는 좋은 평가를 하기 힘들 듯합니다. 잘 만든 영화고 연기나 장면 연출이나 영화 자체에는 무리가 없어요. 다만 불편한 것은 '비극을 위한 비극'을 보여주기 위한 영화란 뒷맛 때문이겠죠.

사실 더러운 현실에서도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점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와 영화 더 로드는 비슷한 점이 많다고 봅니다. 둘 다 주인공들은 결국 현실의 자신 앞에 닥친 고난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 때문이죠. 하지만 한쪽에는 감동했지만 다른 쪽이 불편했던 것은, 뮤지컬이 음악과 서사의 시너지로 감정을 고조시키는 매체고 영화 더 로드는 영화 중에서도 꽤 담백한 편에 속했던 문제만은 아닌 거 같습니다.

주어진 상황의 공감이나 이해를 못하면 역시 그 컨텐츠에서 받는 감상은 떨어지더라고요. --;
공감하지 않는데 느끼고 감동 받으라고 강요받는 기분이랄까요. 신파극을 보는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바타도 사소한 이유로 몰입이 깨졌다가, 2번쯤 감상하니 더 좋더란 말이죠.
역시 어떤 컨텐츠에서 몰입을 주는 건, 그 이야기의 배경이 얼마나 현실적이냐가 아니라 얼마나 내부에서 완성된 개연성을 갖느냐가 중요하잖나 싶습니다. 비극을 위한 비극은 신파일 뿐이니까요.


 

1. 얼마나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가

- 허구헌날 차원이동물만 질러대는 사람은 시나리오 라이터로서 오래 못간다. 비록 라이트하더라도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다양하게 보여줄 수 있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스토리 텔러로서의 수명이 결정된다. 좋은 시나리오 라이터나 스토리 텔러는 다양한 이야기의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있다.

2.  자신이 재미있게 쓴 이야기와 다른 사람이 재미있게 읽을 이야기를 구분할 것

- 자기가 신나게 썼다고 해도 그게 다른 사람들에게 신나는 글은 아니다. 근데 자기가 재미있게 썼는데 남들은 왜 재미가 없다고 하는지 통 이해를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은 항상 그래서 자신만 즐거운 이야기를 쓴다. 상업작가로서 역량은 제로.

3. 다른 사람의 지적이나 비판에 귀를 기울일 것

- 늘 스토리의 뒤심이 약하다거나 비약이 심하다고 지적을 받아도 못 고치는 사람이 있다. 실은 그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비평이나 지적에 대체로 귀를 기울이지 않는  타입이다. 그러니 10년이 지나도 옛날에 쓴 글과 똑같은 글을 복사해내고 있다. 자기는 그러는 줄 모르면서 그러는 거 같으니 그나마 다행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