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지났지만, 맨 오브 라만차를 봤습니다.
그런데 이게 몇 번째 보는지 모르겠군요.
이상하게 이 공연은 매번 공연할 때마다 보는 거 같네요.
심지어 캐스팅도 류정한씨와 이혜경씨의 캐스팅이었습니다.
공연 시기가 달라져서인지 무희들의 의상이 달라진 거빼곤 주연들의 의상(?)도 거의 그대로 활용한 듯한 공연이었고요. 거의 비슷한 느낌이긴 했는데, 류정한씨의 돈키호테 연기는 좀 더 무르익었구나란 느낌이 들었습니다.
LG 아트센터의 무대는 깊이가 깊고, 폭이 좁은데요.
그 좁은 무대가 답답해 보이진 않더군요.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역시 음향은 국립극장보다는 LG 아트센터가 낫단 느낌이에요.
맨 오브 라만차는 볼 때마다 희망을 리프레쉬 받는 느낌입니다.
특히 현장에서 듣는 '이룰 수 없는 꿈'은 언제나 감동적이죠.
픽션이 그토록 감동적이고 픽션에서의 영웅들의 삶이 그토록 숭고해보일 수 있는 건, 그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일들을 하면서 반드시 보상을 받는 내용이기 때문인 듯합니다. 현실에서는 그러진 못하지만, 극에서는 자신이 말하고 싶은 의도에 따라서 영웅들에겐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보답을 주기 때문이죠.
근래에는 영화 더 로드도 봤습니다.
아바타의 핵폭탄급 인기 때문에 빨리 간판을 내린 탓인지, 극장에서는 보기 힘들더군요. 그래서 어둠의 루트(-_-; )를 통해서 볼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이 영화는 나쁘지 않은 캐스팅에 나쁘지 않은 이야기인데도 사실 마음에 들진 않는 이야기더군요.
보고 있으면 왜 이 영화가 아바타에 밀릴 수밖에 없었는지 알겠더군요.
아바타가 사람들이 보고 싶어하는 것을 보여주는 반면에 더 로드는 사람들이 보기 싫어하는 것과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합니다.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서 인간을 먹고, 자신의 물건을 빼앗아간 이에게 보복하기 위해서 병든 사람의 옷을 빼앗고... 그런 이야기들이 나오죠. 저런 이야기도 나쁘진 않아요.
하지만 문제는 저 영화의 배경이 그저 저런 이야기를 보여주기 위한 세팅만을 위한 것을 보인다는 겁니다. 재난의 실체가 뭔지 그것이 시작이 어땠는지 이야기를 하지 않고, 마치 '고도를 기다리며'처럼 추상적인 상황만을 제시합니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연극적인 상상력이 필요한 작품이었으니, 그랬다 치지만 굳이 영화란 것을 보여주면서 저런 식의 배경을 취했어야 할 이유를 모르겠더군요. (어디선가 굳이 영화로 만들 필요없었다란 평이 있다는 걸 좀 납득했습니다.)
소설은 좀 더 몰입하기 쉽고 세세한 사건을 다루고 있을지 몰라도, 영화 자체만으로는 좋은 평가를 하기 힘들 듯합니다. 잘 만든 영화고 연기나 장면 연출이나 영화 자체에는 무리가 없어요. 다만 불편한 것은 '비극을 위한 비극'을 보여주기 위한 영화란 뒷맛 때문이겠죠.
사실 더러운 현실에서도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점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와 영화 더 로드는 비슷한 점이 많다고 봅니다. 둘 다 주인공들은 결국 현실의 자신 앞에 닥친 고난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 때문이죠. 하지만 한쪽에는 감동했지만 다른 쪽이 불편했던 것은, 뮤지컬이 음악과 서사의 시너지로 감정을 고조시키는 매체고 영화 더 로드는 영화 중에서도 꽤 담백한 편에 속했던 문제만은 아닌 거 같습니다.
주어진 상황의 공감이나 이해를 못하면 역시 그 컨텐츠에서 받는 감상은 떨어지더라고요. --;
공감하지 않는데 느끼고 감동 받으라고 강요받는 기분이랄까요. 신파극을 보는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바타도 사소한 이유로 몰입이 깨졌다가, 2번쯤 감상하니 더 좋더란 말이죠.
역시 어떤 컨텐츠에서 몰입을 주는 건, 그 이야기의 배경이 얼마나 현실적이냐가 아니라 얼마나 내부에서 완성된 개연성을 갖느냐가 중요하잖나 싶습니다. 비극을 위한 비극은 신파일 뿐이니까요.